문화>영화리뷰>‘말모이’ | 문화
관리자 | 조회 2156 | 2019-01-18 13:13
평범한 사람들이 쓴 위대한 이야기
제목만 언뜻 보면 말에게 모이를 ? 이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러나 영화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이라는 다소 무거운 시대상황을 소재로 다루었지만 대중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말모이’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을 소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일제의 서슬 퍼런 탄압을 피하여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말을 모아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처음으로 다룬 영화이다. 교훈적인 내용이 가득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장면 장면마다 웃음과 훈훈한 정이 흐르고 감동의 눈물이 있다. 재미와 감동과 교훈이 잘 어우러진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인 듯싶다.
주인공 판수역의 유해진 배우는 ‘까막눈’의 건달로 분하여 영화의 모든 장면에 유쾌한 웃음을 불어넣으면서 진한 감동까지 아우른다. 두 시간여 동안 극을 힘 있게 끌어가는 배우로서의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아들의 밀린 월사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수(유해진)는 조선어학회대표인 정환(윤계상)의 우리말 사전 원고가 들어있는 가방을 훔친다. 이를 계기로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우리말 사전만들기’라는 한 배를 타는 공동운명체가 된다. 애당초 출신부터 외모, 성격 등이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뜻을 같이 ‘동지‘가 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수 년 간 작업해 온 원고를 일본경찰이 들이닥쳐 강탈해가는 장면에서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허탈감에 빠져있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동료회원 조갑윤(김홍파)선생이 만일을 위해 사본을 만들어 두었던 것을 알게 되어 다시 ‘말모이’ 작업에 나선다, 전국의 학생들에게 사투리 수첩을 만들어 판매하여 우편으로 받아서 모으는 작업을 하고, 조선어선생님들을 모아서 비밀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말 사전 만들기에 박차를 가한다.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우리말 사용금지는 물론 이름조차 일본식으로 바꾸어야만 했던 시기에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애썼던 지식인들과 이면에서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 힘을 보탠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애국심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고, 우리말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다.”는 대사가 말해주듯이 영화 ‘말모이는’ ‘조선어학회사건’ 이라는 역사적인 사건 이면에 가려진 수많은 민중들의 독립에의 열망을 담아낸 작품이다.
우리나라는 2차대시전이 종식된 후 식민지였던 나라들 중 자기나라의 말을 온전히 지켜낸 유일한 국가라고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역사상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말과 글에 있고, 또한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정신에 있다고 생각된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