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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1915 | 2019-05-24 17:53
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이 시집은 서정시의 대표 시인, 안도현이 문학적 감수성으로 ‘65편’의 시를 가려 모은 시집이다. 시집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엮은이와 그림, 시(詩)이다. 엮은이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의 구절이 담긴 ‘너에게 묻는다’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로 유명한 시인이다. 따뜻한 색감으로 감성을 극대화해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특징은 눈동자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화백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 작업의 눈빛은 아련한 그리움을 담는다. 현실보다는 추억이나 다가올 삶의 깊이를 표정에 묘사한다. 그래서 늘 눈빛이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수줍어하면서 뭔가를 되새김하는 느낌으로 전달된다.”
‘65편의 시’를 수록하게 해준 시인은 도종환, 문태준 등 거장부터 신진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단(詩壇)을 이끌어 가는 대표 시인들이다. 이들의 시 65편은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한쪽씩 담긴, 아무 쪽이든 펼쳐 보고 싶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는 65편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세밀한 시인의 언어이다. “시인의 세밀한 관찰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생생한 윤기를 부여합니다.” “시인은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깊어진 가을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세밀한 시인의 언어는 … 이렇게 십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전환시켜 놓는다.”
작품 ‘억새풀’에서는 유심히 들여다본 시인의 관찰 덕분에 독자는 하찮은 풍경인 억새풀에서 생생한 윤기를 보게 된다. ‘한 점 해봐 언니’에서는 현실을 들쑤시는 언어로 읽는 사람으로하여금 쾌감을, ‘도토리들’에서는 익숙한 대상을 단숨에 매력적으로 바꿔놓았다
두 번째 ‘연민의 눈’이다. “시에 깔려 있는 연민의 눈 때문이다. 연민은 가시가 없고 넘치지 않으며 언제나 둥그스름하다. 늘그막에 늘 ‘그럼그럼’ 고개를 끄덕이고, ‘그렁’한 눈으로 세계를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12월’의 행간인 “가슴에서 왕겨 부비는 소리를 듣는다”에 시인은 왕겨 껍데기에 슬픔을 입히기도 하고, ‘의자1’ ‘나팔꽃’에서는 존재가 있음에도 없는 듯, 스쳐 지나온 작고 낮은 것에 대한 시인의 따뜻한 눈빛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 ‘성찰’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미안하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면 그는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억을 호출할 때 가끔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낄 때가 있다. 가진 게 없었지만 사람이 사람의 마음으로 살던 시간을 떠올릴 때 특히 그렇다.”
아버지의 죽음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자식의 마음을 다섯 줄로 표현한 ‘하관(下棺), 여전히 어머니의 살을 저미며 사는 모습에 목이 메는 ‘젓갈’이 그러하다. 또한 ‘우는 손’은 어릴 적 장난으로 매미를 잡으며 놀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다 ‘평생 우는 손’으로 살게 된다는 시인의 낮은 목소리에 ‘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 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詩)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시는 저에게 “문득 저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 이었다. 허나, 문득 달이 휘영청 밝아 그 소년이 생각날 때, 문득 나무 아래 빈 의자 반 뼘 모자라 기우뚱 놓여 있을 때, 문득 물가재미식해 한 접시 마주할 때, 그때 문득 ‘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 추억을, 사람을, 책장을 뒤적이게 했다.
이 시는 문득 시를 읽고, 있는 듯 없는 듯 시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 주는’ 책이다.
글 한지연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