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취재>충북옥천 일박이일여행 둘째 날 | 문화
관리자 | 조회 1196 | 2021-10-08 12:35
용암사, 정지용 생가,옥천향교, 부소담악 등 방문
충복옥천 일박이일 여행 둘째 날 운해 속 일출로 유명한 용암사를 방문했다. 일출시각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 출발했다. 용암사는 산길을 한참 올라가서 옥천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었다.
용암사 뒤편 장령산 운무대에 올라 바라본 운해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용암사 운해는 미국 CNN에서 소개할 만큼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수십 개의 산봉우리가 잠겨있는 운해는 겹겹의 구름의 물결이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이런 풍경은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날씨에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운무대(雲霧臺)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유명하지만 운무대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경관도 충분히 장관이다.
용암사에서 내려와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쉬었다가 정지용 선생 생가를 방문했다. 한 때는 정지용 생가가 있는 이 구읍사거리가 옥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생가 옆에는 정지용 문학관이 있고 아직도 실개천이 흐르고 있는 건너편 벽에 유명한 시 ‘향수’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정겨운 고향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노래 ‘향수’의 가사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1950)선생은 충청북도 옥천(沃川) 출생으로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로 대상을 선명하게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열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시인 정지용의 작품 속에는 일제강점기와 남북의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의 시는 특유의 시어와 이 지역의 구수한 사투리들로 쓰여져 더욱 향토적이고 정겨운 시가 되어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정지용 생가에서 고육영수 여사 생가로 가는 길에 옥천사마소에 들렀다. 사마소는 본래는 어려운 백성을 위해 곡식을 저장해 두었던 의창 건물이었는데 후에 고의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학문과 정치 지방행정의 자문을 하던 곳으로 이용 되었다고 한다.
사마소에서 오 분정도 거리에 있는 고육영수 영사 생가를 방문했다. 육영수 여사 사후 관리가 안되어 쇠락하자 1996년도에 철거했다가 2002년 충북문화재 123호로 지정되어 2010년에 안채와 사랑채 등 13동이 복원완료 되었다. 17세기 세 명의 정승이 거주하던 가옥으로 조선 상류계급의 가옥 구조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최상류층이 거주했다는 99칸 대가집으로 10여채 나 되는 가옥의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옥천향교는 지방에 있는 향교 치고는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에 홍살문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전면에 명륜당이 위풍 당당하게 서 있다. 명륜당은 누각 형식으로 지어져 가운데 장학공간인 마루와, 양 옆으로 온돌방이 두 칸 있는 것이 특이하다.
명륜당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널따란 잔디밭이 나온다.
왼편에 오늘날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홍도당이 보이고 앞쪽에 보이는 내삼문 너머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보인다. 내삼문은 사당으로 출입하는 세 개의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는데 문득 왜 문을 세 개나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 기와를 이고 있는 돌담아래 아래 연분홍 상사화가 소담스레 피어 있는 고즈넉한 풍경에 잠시 눈길이 머문다.
향교에서 나와 마지막 행선지 부소담악으로 향했다. 이곳은 원래 얕은 강이었으나 대청댐 건설로 인해 주변 산 일부가 수몰되어 대청호 가운데 생긴 병풍바위 주변 풍광이 절경이다. 호수 가운데로 만들어진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양옆으로 보이는 호반풍경이 그림같이 예쁘다.
언덕위로 올라가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추소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대청호반의 빼어난 경치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었다. 가을 여행지로 이 곳 만큼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