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만나다] 효사랑가족요양병원 유영권 원장 | 의학
관리자 | 조회 3048 | 2016-06-30 15:06
“치료 이전에 관계 형성이 중요, 환자가 아닌 친구에게 말 건네듯 시작”
최근 KBS와 SBS에서 두 편의 의학 드라마가 동시에 시작됐다. ‘닥터스’와 ‘뷰티풀 마인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뷰티풀 마인드’의 모연출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죽기 전까지 수차례 병원에 간다. 하지만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의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가려한다” 헬스케어뉴스의 새로운 기획 [명의를 만나다]의 첫 번째 주인공 유영권 원장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의사로서의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의사’를 말한다. 그는 병원이 환자와 의사 모두가 행복한 공간이 되길 꿈꾼다. 그 마음이 그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다. |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다. 타고난 성격이 매우 긍정적인 듯하다?
아, 그래요. 좋은 말씀으로 칭찬으로 듣겠습니다.(웃음) 제가 요양병원에서 근무한지 8년쯤 되는데, 이전 급성기병원에서 진료할 때와 달리 환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이나 이야기, 정서 등이 이곳에서 더 충만해서 더 웃게 되는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급성기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제 생각도 많이 바뀐 면도 있구요.
환자들이 유원장님 미소만 봐도 병이 다 나은 것 같다고 할 것 같은데요?
허허...그럴 리가요. 하지만 환자와 라포(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 저의 미소가 큰 기여를 하는 것은 맞습니다. 사실 병원에 오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가 처음에 두려움을 갖습니다. ‘의사, 간호사들이 과연 나를 잘 돌봐줄까?’ 이럴 때, 가족 같은 분위기로 편안하게 대하면, 이분들이 차츰 안정될 뿐 아니라 입원 후에 치료나 관리 과정에서도 효과가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며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다’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예를 들면 90세 환자가 있는데, 평소 젓갈을 아주 좋아하세요. 그래서 매일 젓갈을 드시는데, 손과 발에 부종이 왔다고 젓갈을 못 먹게 할 것이냐? 과거에 제가 급성기병원에서는 ‘절대 안된다’ 단호하게 금지 시켰을 텐데, 여기에서는 ‘부종이 왔으니 조금만 드세요’하면서 줄이도록 처방하죠. 아마 동료 의사 중에는 제게 ‘왜 의사가 환자에게 끌려 다니느냐! 의사 자존심이 있는데 안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장기적인 치료에는 분명 더더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진료부터 진단, 처방까지...모든 과정이 치료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바뀐 거네요?
그렇죠. 과거 급성기병원에서는 환자를 위한 의학적 방법이 10이 있다면, 저는 10을 다 해야 의사의 역할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보호자들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환자 또는 보호자가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들이 6을 원하면 10을 설명해 드린 다음에 6.5 또는 7까지 해보자라고 말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유원장님의 그런 변화가 실제 환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는지 궁금하네요?
한마디로 환자와 관계가 좋아져서 치료도 잘됩니다. 요양병원에 오는 분들은 나이가 많으면서 신념도 강합니다. 종교적 신념 외에 정서적, 음식, 민간요법, 가치 기준에 대한 신념 등등이 있거든요.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그 신념을 부정하면, 다음 단계의 진료가 진도가 나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신념을 지켜드리면서 치료를 하면 관계가 좋기 때문에 효과도 좋을 뿐 아니라 속도도 휠씬 빠릅니다. 어떤 환자 분이 질갱이 풀을 드시고 위장병이 나았다. 그래서 계속 드시고 계세요. 그런데 의사가 그것은 간에 좋지 않다고 못 먹게 하면, 다음 치료를 거부하거든요. 그래서 질갱이즙을 드시되 하루 3번 드시는 걸 1번으로 줄이는 방법을 쓰죠.
환자들에게 잘 설명하고, 잘 설득해서, 잘 협조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하시네요?
제가 정반대로 해봤잖아요. 7년 전에는 환자분께 ‘질갱이즙 계속 드실거면 퇴원하세요. 제 말 안들으실거면 빨리 퇴원하세요’ 이렇게 한 케이스와 지금의 케이스와 비교하면 제가 확신이 드는 거죠. 젊은 날에는 의사에게 의학적 지식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는데, 8년간의 요양병원 현장에서 점점 확신이 서는 것은 의학은 과학이면서 예술과 문화, 사회학과 경제학 그리고 인문학 등이 버물어진 종합 예술이다는 것이죠. 그러니 제가 그만큼 노력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환자들 만나는 것이 즐겁죠. 그냥 의사가 아닌 표현이 서툴긴 하지만 ‘제 스스로 저를 의료 종합 예술가’로 설정하고 환자와 만나면 그 기운이 전해져 행복감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입원 환자들 사이에서 유원장님 인기가 굉장할 것 같은데요?
음음...글쎄요. 인기는 잘 모르구요. 환자들께서 저를 ‘의사 선생님이 아닌 의사 친구’로 대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 중에 제가 직접 별명을 붙인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은 당기세 친구, 달타냥 친구에게 회진할 때 ‘당기세 친구, 오늘은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하면 친근감이 형성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죠. 그리고 환자 분의 젊은 시절 직함 00대령님, 00교장선생님으로 불러드리는 것도 제 노하우인데요. 97세 치매 어르신은 가족이 병문안을 와도 움직임이 없는데, 제가 ‘00교장선생님’하고 부르면, 두 눈을 번쩍 뜨시거든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약보다 효과적인 처방인거죠. 치료의 30가 약이고 의사의 말과 행동이 70을 차지한다고 봅니다.
이 코너의 공식 질문의 하나인데요.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요?
의학적 지식은 기본이겠죠. 지금도 매일 매일 지식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자료를 살펴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알기 위해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의학 지식은 그 다음이다고 봅니다. 의사는 물론 의학도 전지전능하지 않습니다. 의사란 흰 가운을 입고 의학적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스스로 경계하는 것을 늦추면 안되겠죠.
우리네 삶이 그렇듯 의료 현장에서도 이성과 감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의사로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이성 VS 감성이라는 틀에 박힌 경쟁 구도를 떠올리는 것이 아닌, 흑과 백처럼 뚜렷하게 나뉘어져 섞이지 않을 것 같은 고정관념이 아닌, 서로 보지 못하는 맹점을 깨닫고 협력하는 미답(美答)을 제시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하는 사람, 그가 의사 유영권이다. |
글 오숙영(수석기자) , 사진 김종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