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역의 민낯 ③ 바나나가 ‘지역 이기주의’라고요? | 문화
관리자 | 조회 3181 | 2016-08-05 15:02
우리 사회에서 님비(NIMBY), 핌피(PIMFY)와 나란히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일명 ‘바나나’(BANANA)다. 먹음직스런 노란 바나나가 아니다. 영어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의 각 단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이다. '어디에든 아무 것도 짓지 마라'는 것으로 흔히 님비증후군(nimby syndrome)와 비슷한 개념으로 소개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내 집 앞마당, 뒷마당을 넘어 그 어디에도 안된다는 것일까? <기획 시리즈, 지역의 민낯> 세 번째로 바나나 현상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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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비와 비슷하다는 바나나현상,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있을까? 인터넷을 검색하니 이렇다. <미국, 유럽 등 선진 산업 국가들의 제3세계로의 산업 폐기물 수출 실태 및 우리나라에서의 대규모 쓰레기소각장 설치 반대 시위, 자기 지역 내에 있는 교도소와 구치소의 이전 문제를 호소하는 주민들 역시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내용으로는 <각종 환경오염 시설들을 자기가 사는 지역권 내에는 절대 설치하지 못한다는 지역 이기주의의 한 현상이며 공공정신의 약화 현상>이란다.
바나나 현상은 님비나 핌피와 달리 환경오염시설에 국한해서 사용한다.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짐에 따라 일정 지역 거주민들이 지역을 훼손하는 오염 산업 유치를 집단으로 거부하는 것으로 원자력발전소, 핵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시설의 설치를 막는 것으로 갈등 양상이 대규모적이다. 최근 국가적 찬반 사태를 불러온 사드를 둘러싼 ‘전자파’ 논란과 갈등이 바나나현상이다. 물론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환경적 측면으로만 본다면 ‘바나나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도로나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내 집 앞에 버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님비와 구별되기도 한다.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바나나 현상이 공공(?)성을 띤다는 주장이 무리가 없다.
어디에서든 신도시 건설과 SOC 건설 사업이 추진되면, ‘개발과 환경 보전’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재발할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방조제 건설이 완료된 새만금의 내부 개발을 위한 매립토 확보, 고속철도와 신규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환경 파괴 논란 등 어느 곳이든 시설 설치나 개발을 반대하는 여론이 있다. 이것이 바나나 현상이다. 바나나 현상은 극도의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지지하고 거드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현상으로 분석돼야 한다.
핵쓰레기장과 같은 환경 유해 시설이 들어오면, 주민들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 최악의 경우에는 생명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반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바나나 현상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기보호를 위한 정당방위적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약 꼭 설치해야 하는 시설이라면 공청회 등을 통한 주민 의견 수렴, 외부 효과에 대한 보상, 유치 희망 지역 조사, 환경 영양 평가 등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님비, 핌피, 바나나... 모두 지역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단어를 피해갈 수는 없다. 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오숙영(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