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지역의 민낯 ④ 떼법, 있을까? 없을까? | 문화
관리자 | 조회 2601 | 2016-08-19 11:24
<기획 시리즈, 지역의 민낯>에서 앞서 다룬 주제는 모두 영어이다. 님비(NIMBY), 핌피(PIMFY), 바나나(BANANA)...이 세 가지 현상을 명명한 사람 또는 시작(?)된 지역이 국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 시리즈 마지막 주제는 이름부터 국산이 틀림없는 ‘떼법’이다. 세상에 법이 참 많지만, 떼법이라니...네이버 백과사전에까지 올라와 있다. ‘떼법이란, 법 적용을 무시하고 생떼를 쓰는 억지주장 또는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불법시위를 하는 행위로, 이 신조어는 집단 이기주의와 법질서 무시의 세태를 보여 준다’ 이 설명의 핵심 키워드는 ‘무시’다. 법이 있으면 그대로 지켜야지, 떼를 쓴다고 바꿔서야 되겠는가? 의미를 담고 있다. 알겠다. 하지만 누가, 무엇을, 왜, 어떻게 무시하는 것이 떼법일까 고민해보고자 한다. |
지금 이 순간 ‘떼법’이란 단어는 누가 사용할까? 검색창을 친다. 지난 15일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은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다"고 말했다. ‘떼법’이란 단어는 한 나라 대통령이 공식 행사 인사말에서 언급할 만큼 대중화 됐다. ‘헌법 위에 떼법’이라는 관용구(?)까지 만들어졌다.
‘떼법’이란 단어를 누가 왜 만들었을까? 늘 그렇듯 신조어의 어원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다. 포기할 즈음, 참여사회연구소가 이 단어와 관련해 조사한 결과를 내놓은 기사가 눈에 띈다. 1997년부터 2008년 5월까지 신문기사를 대상으로 ‘떼법’이란 말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조사한 것이다. “단순 빈도수로 보면 한국경제(73회), 동아일보(50회), 중앙일보(37회), 조선일보(33회), 경향신문(23회), 한겨레(14회) 등이 랭킹 됐다. 사용 의도를 보면, 경제지 또는 보수지로 평가되는 신문은 ‘파업 시위 비판’에, 한겨레·경향 등에서는 ‘정책 우려’와 관련된 기사 혹은 칼럼에 많이 쓰인다”는 내용이다. 같은 단어를 써도 주체에 따라 다른 어법이 작동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뗴법은 없다」라는 책이 출간됐다. 서문은 이렇다. ‘천하에 떼법은 없다. 억눌린 대중의 하소연이 있고 답답한 군중의 함성이 있을 뿐 떼법은 없다‘ 이 대목에서 최근 떼법 딱지가 붙은 경북 성주가 떠오르는 건 어떤 이유일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를 말하며 독배를 마셨다. 그는 법치주의자일까? 떼법의 희생자일까? 이를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첫번째로 법치주의적 관점이다. 법치주의는 통치자가 자신 의지에 따라 멋대로 다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이념이다. 국민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이념이 아니다. 법은 공론의 반영이다. 공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갈등과 논쟁을 통해 쟁점이 만들어진다. 즉, 민주주의 국가의 입법 과정은 그 시작부터 ’떼법‘일 수밖에 없다. 만약 떼법이 아니라 소수 전문가만 법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두 번째 관점은 형식적 법치와 법치는 다르다는 관점이다. 절차상 하자만 없으면 모든 법이 정당화되며, 그 법에 모두 복종해야 하는 것일까? 인류 역사상 모든 독재자는 바로 이 형식적 법치를 주장했다. 절차에 따라 정해진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형식적 법치는 법치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다. 실질적 법치는 입법과 적용 과정에서 끊임없이 타당성을 입증해야 국민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법은 계속 바뀐다.
총 4회에 걸친 <지역의 민낯> 마지막 기획은 온통 질문이다. 떼법이란 단어의 사회적 함의와 주체의 해석에 따라 무기가 되기도 하고, 흉기가 되기도 때문이다.
오숙영(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