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를 만나다]가족사랑요양병원 내과 진희종원장 | 의학
관리자 | 조회 3324 | 2016-08-31 15:06
태양의 후예 강모연, 닥터스 유혜정, W 오연주의 공통점은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이다. 이외에 미인이다, 긴 머리 스탈이다, 순정파이다 등등 많다. 필자의 눈에 띄는 공통점은 따로 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환자와 보호자를 동시에 살피고 말을 건넨다. 의사가 환자를 살피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환자의 치료를 위해 보호자에게 묻고 변화가 있으면 즉각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드라마 속 풍경이다. 일상의 병원 풍경은 ‘자꾸만 꼬치꼬치 묻고 무언가를 말하는 보호자, 듣다가 살짝 귀찮아하는 의사’이다. 그런데 보호자의 잔소리를 귀하게 듣고, 심지어 더 해달라고 요청하는 의사가 있다. 진희종 원장이다. 왜 그럴까? 들어봤다. |
Q. 보호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노년층은 청,장년층과 달리 위험의 문턱까지 가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한데, 그 신호가 아주 작다. 의료인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데, 보호자는 다르다. 매일 함께하기 때문에 그런 시그널, 변화를 가장 잘 체크할 수 있는 분이다. 보통 노인들은 끝까지 버티다가 어느 순간 놓아 버리고, 강을 건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작은 힌트를 놓치지 않는 것이 결정적이다. 보호자 눈이 가장 정확하다. 그래서 보호자가 자주 오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보호자의 잔소리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그 안에 치료의 힌트나 정보가 있다. 저는 보호자가 고맙다. 급성기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말이 컨플레인이었다. 지금은 보호자의 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좀 주세요, 언제든지 주세요, 제발 주세요’ 한다. 과한 말씀도 저에게는 정보이다. 컨플레인은 소중한 것이다.
Q. 그렇게 해서 환자를 치료하고, 병증을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나요?
급성기 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 치료 방법이나 기술, 스텝 등등 모든 최고의 처치를 하는데도 환자가 나빠지는 경험이 있다. 왜 그렇까?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노인병원 근무를 하면서 답을 찾았다. ‘케어’가 답이었다. 시설과 약, 의료기기, 의학기술 외에도 ‘보호자의 케어’가 노인환자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 치료에서 보호자의 몫이 분명 있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자주 방문해서 관여를 하고, 잔소리도 하라고 권한다.
Q. 청,장년층과 노년층의 치료와 병증까지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청,장년은 젊기 때문에 표현도 확실하고 증상도 확실하다. 반면 노인은 폐렴에 걸려도 기침 가래가 없고, 기력이 조금 없는 정도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아침에 식사를 못하면 이것이 감정 변화에 따른 식욕저하인지 질환인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 중에 하나가 ‘의식저하’이다. 의식저하 환자가 오면, 모두 뇌쪽 질환을 의심한다. 그래서 뇌병변 등 관련 검사를 원인을 찾을 때까지 하는데, 노인은 페렴에 걸려도 의식저하를 보인다. 부모님이 아침에 잘 안 깨어난다고 병원에 갔더니, 뇌 이상 쪽으로 검사를 하다가 폐렴 치료의 시기를 놓친 경우도 있었다.
Q. 그렇다면 하나의 독립 학문으로 노인의학과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암 같은 경우도 노인은 암이 천천히 성장해 여명에 영향을 안 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조건을 무시하고 모든 암을 똑같이 치료하면, 노인의 경우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다. 사실 저도 겪은 오류이다. 급성기 병원에서 근무하다 요양병원으로 옮기면서 “병에 걸린 환자가 다 똑같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쪽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니 다름을 확연히 느낀다. 소아과 책 첫 머리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children isn't small adult. 노인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노인의학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Q. 전문의 제도가 아직은 없죠?
분과 전문의 제도는 아니고 비공식적 노인병 전문의 시험 제도가 있다. 앞으로 분과전문의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독립적인 ‘노인병학’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고령화가 올 줄 몰랐지 않은가. 저도 마찬가지다. 노인병학을 주장하는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유형준선생님 밑에서 수련의 과정을 받았는데, 당시에 유교수님이 그렇게 강조해도 감이 안 왔다. 그런데 지금은 유교수님 말씀이 정말 맞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Q. 노인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하셨는데, 일찍부터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았나요?
졸업 후에 급성기 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2년간 일요일도 없이 365일 회진을 했다.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초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선택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노인환자들은 기저질환이 많고, 증상이 청장년층과 달라서 막판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긴박한 상황도 없진 않다.
Q. 급성기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겼을 때, 잘 적응하셨나요?
처음에는 전하를 많이 받았다. 왜 잘나가는 급성기 병원 응급실, 중환자실에서 인정받고 촉망받는 젊은 의사가 왜 옮겼냐고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어서 나와서 다시 급성기병원에서 근무하자는 문자도 받고, 심지어 환자가 저를 찾아 오셨다. 제가 담낭염을 수술시켜 건강해진 분인데 ‘진선생님은 요양병원에 계시기 아까운 분이다’ 고 했다. 당시에 제가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당시 33살이었다. 요양병원에 젊은 의사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사명감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무시하는 분야인 노인병 치료에 제가 더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Q. 노인 환자를 볼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젊은 사람은 병만 보면 되지만 노인은 병증, 질환만 보면 안된다. 노인 한자는 가족사를 알아야 한다. 가족사를 통해 강점 변화를 읽어내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치료한 경우가 있다. 어느 환자가 섬망이 하루 하루 심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야한다고 간호사들이 의견을 말하는데, 제가 3일만 맡겨주면 내가 고칠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고, 실제 치료에 성공했다. 또 다른 경우는 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이 간으로 전이돼 폐렴까지 겹치다보니까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 등등 각 분과에서 검사하느라 환자가 5일째 응급실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내가 종합적으로 봐주겠다’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살펴드렸다. 노인 환자는 조각으로 보면 안된다.
Q. 명의를 만나다의 공식 질문입니다.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요?
입장을 바꿔서, 보호자와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이다. 그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은 진료를 하게 된다.
그럴 일은 희박하지만, 그녀는 사막에서도 사명을 세울 사람이다. 일각을 다투는 급성기병원에서나 상대적으로 시간 다툼이 적은 요양병원에서나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자세는 똑같다. 성공과 명성을 눈앞에 둔 탈출(?)이었지만 미래의 환자인 필자는 진희종원장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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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숙영(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