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필>노을을 바라보며 | 문화
관리자 | 조회 2194 | 2017-07-28 18:42
차마 노을을 등지고 갈 수 없어 가던 길을 멈추다.
모처럼 아이들과 산책을 나갔다. 조용한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원했지만 공원은 축제로 인해 음악과 온통 사람들로 시끌벌쩍하다. 가족들과 오롯한 데이트는 물 건너가고 연꽃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꽃은 볼 때마다 경외감을 갖게 한다. 진흙탕에서 어떻게 저렇게 어여쁜 꽃을 피워내는지? 진흙탕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오롯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연꽃구경에 흠뻑 빠져있을 때 쯤 노을이 지기 시작 한다.
나는 하루 중에 해질녘을 제일 좋아한다. 해가 질 때 노을이 진다. 노을이 지면 세상은 온통 검붉은색으로 물든다. 하루를 마감하고 사무실을 나설 때 기린봉 즈음에서 노을을 만난다. 가던 길에 자연스럽게 걸음이 멈추어진다. 한쪽에 자전거를 받쳐 놓고 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노을이 질 때 강렬한 붉은색에 압도되어 입에서 ‘아’하는 탄성도 나오고, 한 낮에 뜨거워서 볼 수 없던 태양을 볼 수 있어서 좋다. 해가 지면 마음 한편이 괜히 먹먹해진다. ‘아 하루가 이렇게 저무는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질까?’ 괜히 마음이 숙연해 진다. 차마 노을을 등지고 갈 수 없어 자연스레 가던 길도 멈추게 되고 이유도 모른 채 하염없이 쳐다본다.
해질녘,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나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얼마 전에 최재천 선생의 칼럼을 보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 때 홀연 파파야 한 묶음을 들고 침팬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지는 해를 발견한 그 침팬지는 쥐고 있던 파파야를 슬그머니 내려놓더니 시시각각 변화는 노을을 15분 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터덜터덜 숲으로 돌아갔다. 땅에 내려놓은 파파야는 까맣게 잊은 채” <최재천, 조선일보 칼럼 중>
인간만이 노을을 보고 상념에 잠기는 게 아닌가 보다. 침팬지도 먹을 것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있나보다. 먹을 것도 잊어버린 채 말이다. 먹을 것을 내려놓고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도 슬그머니 자전거를 한편에 놓고 바라보곤 한다. 가끔은 자전거를 순간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버리고 가지는 않는다. 만약 침팬지가 자전거를 탔더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먹을 거하고는 다르게 놓고 갈지 타고 갈지 궁금하다.
노을이 지는 시간은 대략 십오분에 불과하다.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금으로 여기고 시간을 분초단위에 쪼개 쓰며 살아간다. 심지어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고 한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 지를 반증한다. KTX가 달리고 더 빠른 운송수단들이 등장하는데 여전히 인간들은 엄청 바쁘다고 이야기한다. 노을이 질 때 차를 한쪽에 주차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없이 지켜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가끔씩 푸른하늘을 바라보고 지는 노을도 지켜보며 삶을 반추해보는 것은 어떨까?
헬스케어뉴스 객원기자 오충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