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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수필>추억의 성묘길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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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2104 | 2017-10-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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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에 한 번 할 수 있었던 가족여행

 

 

 

올해는 추석명절 연휴가 한참 길다보니 추석 다음다음 날이 되어서야 친정 부모님 산소에 성묘하러 갔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둡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빗줄기가 더 세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간단히 하고 아침도시락을 대충 챙겨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부모님 산소는 전남 곡성과 구례 사이에 있는 곡성군 옥곡면 봉조리이다. 전주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외진 산골마을의 선산에 모셔져 있다.

 

성묘하러 갈 때마다 어린 시절 매년 추석이면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하러 다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은 부모님과 초등학생이었던 두 살 터울의 오빠와 여섯 살 아래 어린 남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그 먼 산골 마을까지 성묘를 다녔다. 할머니도 생존해 계셨는데 왠지 할머니는 기억에 없다. 아마도 함께 동행하지 않고 집에 계셨던 듯하다.

 

 

 

 

 

옛적에 여수까지 가는 비둘기호는 전주에서 곡성역까지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이른 아침 아니 거의 새벽녘에 출발하는데도 산소에 도착하면 한 낮이 되어 있었다. 기차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홍익회 소속 상의용사 아저씨가 간식거리가 잔뜩 실린 수레를 밀며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던 장면이다.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하게 서있는 사람들을 밀치며 지나가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는 경험은 얼마나 신기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삶은 계란 오징어 땅콩이 왔어요를 녹음테이프처럼 반복하며 지나갈 때마다 먹고 싶어서 침을 꼴각꼴깍 삼켜야 했다. 어쩌다 한 번 사먹던 삶은 계란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지금도 삶은 계란을 참 좋아하고 기차여행 할 때면 꼭 사먹는다.

 

어느 해 인가는 구례 못 미쳐 압록이라는 곳에서 내려 산을 하나 넘어서 산소에 간적이 있었다. 그 때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무척 덥고 힘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곡성역에서 산소가 있는 마을까지 갈 택시비를 아끼려고 그랬을 것이다. 워낙 어렸을 때 일이라 기억이 가뭇하다. 산에서 아버지는 계속 농담을 하시면서 분위기를 밝게 하시려고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가난한 집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아내와 어린 삼남매를 이끌고 산을 넘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제 그 때의 부모님 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그 시간을 되돌아보니 마음 한 켠이 애잔해져온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타지 못해서 기차역까지 걸어 왔던 적도 있었다. 기차역으로 이어진 신작로 길을 따라 코스모스가 끝없이 피어 있었다. 파아란 가을 하늘을 배경삼아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도로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던 시절 다섯 식구가 길을 다 자치하고 걸었었다. 어머니 아버지 손을 맞잡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그네 타는 시늉을 하며 폴짝거리던 어린 내가 세월의 커튼 저편에서 아른거린다. 스스륵 커튼을 열면 금방이라도 깡총거리며 나올 것 만 같다.

 

그 시절 우리가족에게 성묘는 단순한 성묘가 아니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온 가족이 할 수 있었던 가족여행을 겸하는 것 이었다. 성묘가 없었다면 내 유년의 기억에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던 추억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장례문화가 바뀌어서 대부분 화장 후 유골함을 추모관에 모시는 게 일반화 되었다.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시아버님도 추모관에 모셨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뵈러 갈 때마다 왠지 삭막하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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