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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2108 | 2017-12-01 17:08
할머니가 노래를 하는 이유
나의 하루는 일터인 평생학습관의 문을 열면서 시작한다. 사무실에 도착해 가방을 놓고 책상 위에 놓인 잔을 씻는다. 책상을 닦고 지하에 있는 출입문을 연다. 지하를 열고 난 후 공연장 문을 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다. 이층에 올라가면 할머니 한분이 이미 와 계신다. 그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노래교실에 오기 위해 아침 일찍 학습관을 찾는다. 이변이 없는 한 거의 일주일에 두 번은 직원들과 같이 출근하신다.
"할머니 벌써 오셨어요."
"어..어여 문 열어줘"
"식사는 하시고 오셨어요"
"먹고 왔지. 시간이 몇 신데.."
이렇게 몇 마디 건네면 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재촉 하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따라 들어오신다. 날이 추워져 난방기를 켜고 노래교실을 준비해야 하니 노래방 기계에도 전원을 넣어야 한다. 할머니가 꼬깃 한 종이에 써진 쪽지를 건네준다. 여기에 적힌 번호를 노래방 기계에 입력해 달라는 것이다. 마이크도 볼륨을 크게 해주라고 한다. 나는 노래방 기계에 번호를 입력하고 마이크 볼륨을 올린다. 할머니는 즉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시간을 보니 여덟 시 사십분 정도 된다. 정말 이른 시간에 듣는 노래이다. 노래교실은 사람이 많고 아홉시가 조금 넘으면 사람들이 몰려오니 일찍 와서 노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노래를 부를 기회가 없다고 한다. 아침부터 할머니의 노래를 듣는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조용히 부른다. 그리고 조그만 상자를 하나 내민다. "항상 도와줘서 고맙고 노래하게 해줘서 고마워. 작지만 이것 받아" "아니 할머니 괜찮아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거에요." 재차 사양하였지만 별거 아니라며 기어이 주신다. 성당에 다니고 있는 할머니는 크리스마스라고 나에게 조그만 것이라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날 평소에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할머니께 하게 되었다.
"할머니 매일 오시니까 즐거우시죠. 이렇게 매일 일찍 나오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나는 이거 없으면 못살아. 아마 미쳤을 거야" "예.. 아니 왜요?"
“우리 아들이 회사 다닐 때 차사고가 나서 식물인간으로 누워있어. 몇 년 동안 간호만 하다가 힘들어서 나오게 됐어. 나와서 노래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니까 살 것 같아. 안 그랬으면 난 미쳤을 거야”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마냥 즐겁게 노래만 하시던 분이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상자를 열어 보니 양말 한 켤레가 곱게 접어 들어있다. 날이 추우니 따뜻한 양말 신고 다니라고 한다. 선물을 물끄러미 보니 마음이 전해져 왔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보고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그 슬픔을 잊기 위해 할머니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안으로 슬픔을 억누르며 노래하였던 것이다. 할머니는 빠른 노래를 자주 부르셨다. 뭐라 위로를 하고 싶었지만 딱히 할머니에게 할 말이 없어 "할머니 노래 잘하시네요"라고 했다.
한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다시 만난 할머니에게 “아드님 괜찮으세요” 라고 물으니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치루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어두운 얼굴로 그냥 들어가신다. 부르기 좋아하던 노래는 그날은 부르지 않으셨다. 그 뒤로 할머니는 몇 번 더 오셨지만 더 이상 나오지는 않으셨다.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다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 왜 안나오세요” “어, 나 복지관 노래교실이 더 재미있어서 그리 갔어” 할머니는 지금도 노래를 계속 하신다고 한다. 마음의 고통을 노래에 실어서 멀리 멀리 날려버리고 여생을 아름답게 보내기를 소망한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는 할머니다. 슬픔을 감당할 수 없으니 배움으로 승화하였다. 배움으로 기쁨을 찾았고 그 속에서 삶을 지탱하였다. 때론 배움이 삶에 힘이 된다.
오충렬(전주시 평생학습관, 헬스케어뉴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