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북리뷰> ‘영초언니’ 를 읽고 | 교육
관리자 | 조회 2133 | 2018-03-05 20:27
기억되어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이 책을 읽고, 2년 전에 읽은 <D->가 떠올랐다. <D->는 1980년생인 <소수의견>으로 유명한 손아람의 소설이다. <D->와 <영초 언니>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소설인데 자서전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D->는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손아람씨가 본 서울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까지 운동권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학생이란 신분을 운동을 하기 위한 도구로 봤기 때문에 F를 준 교수님께 D-를 달라고 사정하고 투쟁한다. 그래서 소설의 이름이 D-이다. 둘 다 일기에 기초해서 또는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것도 비슷하다. 영초언니는 72학번 천영초와 76학번 서명숙이 활동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학생운동의 이야기가 주라면 D-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까지를 다루고 있어서 30년의 세대 차이가 있고, 저자의 성별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다.
1980년내가 질문하고 싶은 것은 ‘이런 소설이 없었다면 그 시기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시기의 대학가와 학생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2000년대는 X세대의 출연과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대학가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 책에 씌여 있는 것처럼 70~80년대 주류 운동권은 모두 남자만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역사는 기록한 자의 것이고, 기록한 것만 기억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 또한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보여졌던 운동사에 어떤 여성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여성독서모임 <가라열>과 여성문제 동아리 <여연>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여성들의 생애사적 보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암살>이란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여성은 “유관순” 누나만 기억하듯이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책은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를 묻는 책이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 낯선 이름들이 등장한다. 동시대에 같은 마음으로 함께 활동했던 어제의 동지들이다. 심재철 국회부의장은 아폴론처럼 잘생긴 야학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현재 국회 부의장이다.(자유한국당 5선의원) 심재철의 소개로 들어온 눈망울이 소처럼 크고 삐쩍 마른 후배로 소개된 유시민 작가는 지금은 ‘알쓸신잡’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소수진보야당의 지도자였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이혜자씨는 고려대 정문 옆의 수위실을 걷어차 부순 사건으로 특수폭행죄를 선고받아 아직도 유죄로 인정되고 있다. 지금은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의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무엇이 성공이고,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고 아무도 그것을 재단할 수는 없다. 본인이 스스로가 떳떳하고, 과거 친구들과 이물감 없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면 누구나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일이다.
여기에 한 분 더 떠올리고 싶은 사람은 <정문화>이다. 서울대 3대 수재로 소문날 만큼 영민하고, 다른 사람에게 한없이 베풀었던 괴짜이자 항상 유쾌했던 젊은이는 37kg의 육신을 남기고 영양실조로 죽었다. 이미지 사진도 남아있지 않은 그 사람을 보면서 저자가 왜 이 글을 썼는지 짐작이 갔다. 만약에 영초 언니나 정문화씨가 잘 먹고 잘 살았다면 저자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조국을 사랑한 젊은이들이 아낌없는 생을 살았지만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다. 저자는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다. 우리는 오늘 역사를 만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를 만든 사람에게 빚 진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와 사회의 일원으로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했다.
전주평생학습관장 구 성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