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필>비와 가뭄 | 문화
관리자 | 조회 2008 | 2018-03-15 22:00
‘옛집 추녀엔 이끼마져 말라버렸네’
“오랜 가뭄에 논도 밭도 다 갈라지고
메마른 논두렁엔 들쥐들만 기어간다
죽죽 대나무야 어찌 이리도 죽었나
옛집 추녀엔 이끼마져 말라버렸네“
김민기 선생의 ‘가뭄’이란 노래다. 논도 밭도 다 갈라지고, 논두렁은 메말라서 들쥐들만이 다닌다. 물이 없는 대나무는 말라 황죽이 되었고, 고택의 지붕에 낀 이끼마저 말라서 죽었다는 것이다. 가뭄을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지난 겨울 유난히 춥고 건조하였다. 평소 내복을 입지 않아도 자전거를 거든히 탔건만 내복을 입지 않고서는 겨울을 나기 어려웠다. 바람까지 거세서 옷깃을 여민 틈새로 칼바람이 들어온다. 이런 아림은 이 겨울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긴 하지만 뼛속까지 아리고 온몸에 한기가 돈다.
나에겐 가뭄의 지표가 있다. 우선 기린봉으로 산책을 나가면 맨 먼저 만나는 곳이 선린사란 절이다. 이 절을 끼고 돌면 우물 하나가 나온다. 우물에서 나오는 물은 길다란 통을 지나 아래로 떨어져서 고인다. 여름 한낮에 땀이 비오 듯 하면 이 우물에서 목도 축이고 세수도 하고 길을 나선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지 물이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물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가뭄 때문이다.
또 하나의 지표는 천변이다. 거의 매일 아침 천변의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비가 많은 계절에는 천변에 물이 가득해 즐거운 소리를 들려준다. 맑은 천변의 물소리는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힘이 되어 주곤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지 흐르는 물이 점차 줄어들었다. 한쪽 바닥이 드러나고 돌과 모래가 보이기 시작한다. 점차 바닥을 드러낸 모습이 많아진다. 천이 바닥을 드러내면 가뭄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다. 겨울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다. 연일 맑은 날이 지속된다. 맑기만 하니 마음이 건조해지고 편치 않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좋다. 눈 나릴 땐 개들이 좋아라 날뛴다. 개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이라 답할 것 같다. 왜 비가 좋으냐고 나에게 물으면 “그냥”이라 말할 것이다. 비 한 방물 내리지 않는 날이 연일 계속 되더니 드디어 내리기 시작한다.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내리는 비를 마냥 보고 있다. 포트에 물을 뜨겁게 끓이고 한손에 커피를, 나머지 한손엔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비 구경을 나간다. 비가 내리면 보통 내가 하는 행동이다.
갈수록 비가 줄어들고 있다. 비가 잘 내리지 않아 비를 즐기는 일상의 즐거움이 점점 사라져간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바뀌면서 급기야 ‘마른장마’라는 말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물이 충분한 나라가 아니다. 물 부족 국가에 속해있는 것이다. 언제 다시 우리 마을 앞 도랑에서 졸졸졸 흐르는 정겨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자연은 인간이 베푼만큼 되돌려준다’는 이치를 모두 함께 되새겨야겠다.
객원기자 오충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