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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2026 | 2018-05-24 21:16
3박4일제주기행 2편-한라산 등반
제주여행 3일째 드디어 한라산 등반하는 날이다. 여전히 날씨는 개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안개비마저 뿌옇게 내리고 있었지만 계획대로 산행에 나섰다. 한라산 등반코스는 4개 정도가 있는데 우리는 해발 750미터 지점인 성판악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서귀포시내에서 한라산 성판악 오르는 길은 가로수가 마치 아치처럼 도로위로 휘어져서 긴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운무속의 가로수길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갔다.
성판악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인데 벌써 주차장은 물론이고 도로 양옆까지 차량들로 빼곡히 차있었다. 한 참을 가서야 빈자리를 찾아 겨우 차를 주차하고 등산로 입구로 들어갔다. 안개비가 자욱이 내리산길을 말없이 걷자니 좀 지루하였다. 한 참을 걸었는데 뒤따라오는 혼자 걷고 있는 외국인 아가씨가 보인다. 말동무나 하자 싶어서 서툰 영어로 “익스큐즈미, 캔유 잉글리쉬?” 하고 물으니 활짝 웃으며 “예스”란다.
혼자 지루했었든지 말문을 트자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멀리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왔는데 한국이 너무나 멋진 곳이고 특히 한국의 산에 반했다고 한다. 등산을 어지간히 좋아하는가 보다. 그러니 일주일 정도 되는 여행 동안 온전히 하루가 소요되는 한라산 등반에 나섰을 것이다.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한 시간여 만에 속밭 쉼터에 도착하였다.
잠시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인 진달래 밭으로 출발하였다. 진달래 밭까지 오후 1시 이전에 도착하지 못하면 거기서 하산해야하기 때문에 발길을 재촉하였다.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3시간 좀 안돼서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진달래는 이미 절반이상 지고 있었고 안개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운무는 더욱 짙어져서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올해 1월부터 휴게소 매점이 폐쇄되어서 따뜻한 컵라면 국물을 기대하며 왔는데 휴게실은 이사나간 빈 집 마냥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다행히 산 아래서 출발하기 전에 혹시 몰라서 준비해 간 이미 식어버린 편의점 도시락으로 간단이나마 점심을 해결하였다.
산 아래는 운무에 휩싸여 가시거리가 무척 짧았는데 정상에 가까이 올라 갈 수록 날이 맑게 개어 1,700미터 지점쯤부터는 한라산의 수려한 경관에 가슴이 탁 트인다. 백록담 오르는 막판 오르막이다. 10여분 이상 이어지는 계단 길을 올라가자 드디어 백록담의 장엄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신의 위대한 작품 앞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그 순간 힘들었던 장장 4시간여의 등반을 다 보상 받고도 남는 기분이었다.
백록담에 머물렀던 시간은 고작 10여분, 한 바퀴 둘러보고 줄서서 인증샷을 찍고 하산 길에 올랐다. ‘죽음의 돌짝길 구간’을 지나니 다시 진달래 휴게소 근처에 도착하였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보이지 않던 진달래 빛깔이 하도 고와서 저절로 발길이 멈추어 또 사진을 찍는다.
거의 다 내려와서는 막 뿔이 자라나기 시작한 어린 수사슴과 마주쳤다. 대박 '길조'라며 한바탕 사진을 또 찍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덕분에 8시간 넘게 걸은 탓에 발바닥 통증으로 거의 다리를 끌다시피 걸어 내려오던 힘겨운 하산 길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하였다. 고마워 사슴아...
제주 여행을 앞두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망설였던 한라산 등반이었다. 그러나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임을 상기하며 용기를 냈다. 인생과업 하나 이룬 것 마냥 엄청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였다. 내려오면서 너무나 힘들어서 백만 원 준다 해도 다시 못 온다며 농담 삼아 말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2년 이내에 다시 한 번 다른 코스로 등반 해 보고 싶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