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취재>섬진강변, 시인의 마을 방문기 | 문화
관리자 | 조회 2214 | 2018-06-08 20:07
‘아름다운 시절’의 구담마을에서 진메마을까지
섬진강 오백리 물길에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구간이 있다. 임실군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을 지나 장구목으로 흘러가는 물길이다. 이 구간이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은 길이라고 한다. 구담마을에서 인근 천담 마을까지 이어지는 섬진강변은 매화와 벚꽃이 어우러진 구간으로 몇 년 전부터 초봄에 걷기 좋은 여행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회문산 자락 아래 섬진강 상류에 자리한 임실군 덕치면 구담마을은 임권택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임실읍내에서 20여분을 달려서 찾아간 구담마을은 도로에 인접한 언덕배기와 아래쪽의 강가에 있는 가옥들 까지 모두 합해도 겨우 10여호 가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조금 걸어 들어가니 커다란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쉼터가 나온다. 강 위쪽 높은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마을 전망대와 같은 곳이다. 쉼터 중앙에 ‘아름다운 시절’ 영화 기념비가 있다. 언덕 아래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와 한 순간 짧은 감탄사가 나온다. 마을을 굽이돌아 흐르는 섬진강변의 수려한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강같은 세월 (김용택)
꽃이 핍니다
꽃이 집니다
꽃피고 지는 곳
강물 입니다
강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평생을 이 강변에서 살면서 섬진강시인이 된 김용택 선생님의 ‘강 같은 내 세월’은 어떤 세월이었을까. 저 말없이 흐르는 강물은 다 알고 있겠지. 잠시 상념에 빠져본다.
마을 앞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강변으로 내려갔다. 강변 산책길 따라 심어놓은 매화나무에 이미 꽃은 지고 없지만 대신에 새파란 매실열매가 알알이 영글어가고 있었다. 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한 낮의 더위 때문에 강변길 걷기는 얼마 못가 중단되었다. 내 년 매화 필 무렵에 다시 방문하여 강변길 따라 한 나절 도보여행을 꼭 하리라 마음먹고 다음 목적지인 진메마을로 향했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메마을 역시 구담마을처럼 아주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전주에서 순창가는 2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임실 덕치면 경계를 지나면 이정표가 나온다. 큰 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잘 닦여져 있어 교통편이 좋은 편이다.
마을 입구 양쪽에 수형이 잘 잡힌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치 마을을 호위하듯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인의 생가는 수시로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몇몇 여행객이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루 한 쪽에 커피포트와 믹스커피 상자가 놓여 있어 방문객을 배려한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마루에 걸터 앉아 커피를 타서 먹다 남은 얼음생수 통에 부어서 냉커피를 만들어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혹시나 시인을 직접 뵐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출타하셨는지 뵐 수가 없었다. 어떤 여행자가 자신의 블러그에 시인을 뵙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은 것을 보고 내심 기대하였는데 아쉬움이 컸다. 방문객들이 계속 찾아오니 창작활동 뿐 만 아니라 일상생활조차도 정상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시인의 집 방문을 열어보니 각각 한 평 남짓한 큰방과 작은 방의 벽면이 모두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이 산골마을의 작은 집에서 방문 밖에 흐르는 물소리와 작은 마당이 이고 있는 하늘을 벗 삼아 시인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며 시인의 꿈을 키웠을까, 때로는 그냥 하늘이 바람이 산과 강이 시인의 눈과 마음에 시를 가져다주기도 하였겠지. 돌아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김용택 선생님의 시집 한 권 사서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나절 남짓한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