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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누에치기와 번데기에 대한 회상 |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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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2110 | 2018-06-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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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밤


 

 

   어린 시절의 유월 초를 회상해보면 누에가 떠오른다.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지만 뽕을 먹고 자라는 누에에 대한 추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양잠이라고 부르는 누에치기는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키울 수 있었다. 시골에서 누에치기에서 얻는 소득만한 고소득이 없었으므로 시골에선 사활을 건 일이 누에치기였다. 누에는 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유충이다. 한자어로는 잠(천충(天蟲마두랑(馬頭娘)이라 하였다. 누에는 오래 전부터 길러왔기 때문에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이른 봄 집집마다 기르는 뽕나무에 맞게 누에알을 신청했다. 깨알 같은 누에알을 채반에 놓고 며칠 지나면 하나둘씩 애벌레들이 껍질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작디작은 누에들에게 뽕잎을 주기 위해 뽕잎을 써는 모습은 어린 나에게 진풍경이었다. 마치 담배를 썰 듯이 가늘게 써는 그 칼질이 어찌 그리 신기하게 보였던지, 그 뽕잎을 채반에 골고루 덮어주면 그 작은 누에들이 뽕잎에 달라붙어 야금야금 갉아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안 일 틈틈이 누에에 뽕을 주다가 누에가 성장하는 속도에 따라 뽕 따는 일과 누에 밥 주는 일로 스물 네 시간을 다 써도 모자랐다.

 

   어른들에서 아이들까지 뽕 밭에 나가 뽕을 따야 했고, 틈틈이 누에에게 밥을 주고 새로운 채반에 누에를 옮긴 뒤, 가지만 남은 뽕나무 줄기와 누에똥을 갈아주는 일에 매달렸다. 낮은 그런대로 부산하게 넘어갔지만, 방에서 누에를 키우기 때문에 저녁은 누에와 함께 지내야 했다. 그 때가 누에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도 가끔씩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가 누에의 뽕잎 갉아 먹는 소리다. 그 소리 역시 누에가 성장하는 속도에 따라 변화했다. 사각사각은 누에가 그나마 작을 때 내는 소리였고, 성체가 되면 완전히 소나기 내리는 소리와 흡사했다.

 

   “애야, 누에 밥 주어라.” 할머니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가지 채 잘라온 뽕을 누에가 보이지 않게 누에 채반에 놓고, 몇 십 개의 채반에 주다가 보면 처음에 뽕을 준 채반은 그 푸르디푸르던 뽕잎은 보이지 않고, 줄기만 앙상하게 드러나곤 했다. 누에가 성체가 되면 뽕잎 갉아 먹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이 다반사였다. 잠을 못 이루는 불편함보다 더 가슴을 뿌듯하게 한 것은 아침에 깨어났을 때 밤사이 몰라보게 부쩍 큰 누에를 보는 기쁨이었다.

 

  그 누에가 변해서 번데기가 된 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누에를 치는 목적이 견직물의 원료인 고치실을 얻는 데 있었기 때문에 그 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은 뒤 물레를 자아서 고치실을 푸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물레를 저을 때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번데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금은 식당이고 편의점이고 막걸리집이고.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번데기지만 그 무렵에는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물레를 넣어 실을 뽑으면 온 몸을 드러내는 그때뿐이었다.

고치실이 풀리면서 한쪽이 서서히 뚫리기 시작하며 아슴푸레하게 번데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그 순간의 경이와 기쁨 그것을 어찌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리고 기다린 순서대로 하나씩 맛보던 그 뜨거운 번데기의 맛은 잊을 수 없다. 그때의 추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서 귀밑머리가 희어지고, 흐르는 세월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니......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글 신정일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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