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필>불혹에 걷는 다는 것 | 문화
관리자 | 조회 2066 | 2018-12-20 15:19
걷기, 세상을 향한 열림
마흔은 불혹이다. 불혹은 미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미혹되지 말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불혹이 되 던진 첫 질문이다.
마흔에 걷기를 배운다. 걸음마가 아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인간은 3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동물들은 태어나서 1시간이면 일어서고 뛰어다닐 수 있어 천적이 나타나도 엄마와 함께 달릴 수 있다. 불과 한 시간이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모든 채비를 마칠 수 있다. 인간은 네발로 걷다가 엄마가 내밀어 주는 손을 잡고 드디어 두 발로 일어선다. 두 발로 일어선 세상은 높을 것이다. 계속해서 일어서서 걸으려고 하지만 자주 엉덩방아를 찧고 손을 놓고 걷고 싶지만 여전히 엄마 손은 아이를 잡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걷기는 DNA 속 어딘가에 깊숙이 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
걷기는 세상을 향한 열림이다. 인간은 걸어가면서 세상을 인식했다. 나무 위에서 바라본 세상과는 달랐다. 걷고 걸어 어딘가에 닿았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또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걸으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
‘길은 무엇인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길은 물리적 길도 있고 인식론적 길도 있다. ‘道’도 길이지만 우리말로 ‘길’하면 왠지 그 도에 대한 느낌이 오지 않는다. 노자에 보면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고 했다. 길을 길이라고 하지 않으면 무언가. 여기서 말하는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길, 형이상학적 길. 나는 어디에서 무슨 길을 걸으려는 것인가?
“나를 치유한 3000킬로미터 기적의 유럽 걷기 여행”
『천천히 걸어 희망으로』 책의 부제다. 책의 저자인 쿠르트는 삼천 킬로를 걸어서 암을 치유하였다. 그는 64세에 대장암 말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주위에 말류에도 불구하고 평생 소원 인 걷기 여행을 떠난다. 덴마크에서 출발해 이탈리아까지 걷는다. 걸으면서 그의 몸은 서서히 깨어났고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난다.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체험까지 한다.
쿠르트는 우리에게 조언한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기쁨과 충만감을 주는 일을 시작하라고. 그러면 내면에 있는 능력이 깨어나 커다란 행복과 만족감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삶이 질이 바뀐다는 것이다.
삶의 변화를 위한 걷기도 있지만 기분전환을 위해 걷는 것도 좋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왜인지 모르겠다. 걷다보면 상쾌한 기분이 몸을 감싼다.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걷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숨을 쉰다는 것도 살아 있다는 증명이지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끔 걸을 수 있어서 감사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길거리는 걷다 보면 걷기에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왠지 위태해 보이기 아슬아슬하지만, 꿋꿋이 길을 건너고잘 걸어 다닌다. 이럴 때 걷는 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과연 걷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두 다리가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걸으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마흔의 걷기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다. 앞만 보고 살았다면 뒤도 돌아보면서 걷는다. 사십 년 동안 걸어왔던 걸음걸이를 돌아보고 세상을 향해 다시 내딛는 몸짓이다.
글 오충렬 기자